미술품

곽덕준 판화

온평 문어 2022. 3. 2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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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쯤 그때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넷플릭스를 즐기던 85킬로 돼지 시절이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사카라 무덤의 비밀'이라는 다큐를 보고난 뒤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사카라 무덤의 비밀 후반부 즈음 피라미드에 있는 벽화를 해석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걸 인상 깊게 봤었다.

 

며칠 뒤 점심 산책 중 회사동료분께서 곽덕준 화가의 판화를 보여주셨다.

2~3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은 '곽덕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피라미드 벽화를 보는 듯 했다.

 

집 안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주말 내내 곽덕준 화가의 판화작품을 검색했다.

이미 집에 걸어 둘 위치를 정해놨지만 어디서 어떻게 구매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이미 집에 미술관도 만들어놓았다. 상상으로 손자까지 보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회사 동료분의 도움으로 아래의 곽덕준 화가의 판화를 얻을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AP : Artist's Proof 작가 소장용

에디션 : 50 / 100 -> 100장 중 50번째 작품

 

 

출처 : 서울미술관 SeMA - 소장품 상세 - 무의미 9924 (seoul.go.kr)

곽덕준(1937- )은 1955년 교토시립 히요시가오카 일본화과를 졸업하였다. 1966년 첫 번째 개인전(都雅화랑, 교토, 일본)을 시작으로 1966-67년 아노화랑(오사카, 일본), 2001년 부산시립미술관(부산), 2015년 《곽덕준 개인전: Timeless》(갤러리현대,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1974년 《오늘의 방법 74》(교토시립미술관, 교토), 1986년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과 2000년 광주비엔날레 참여했고,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선정되었다. 2012년 《하정웅 콜렉션 곽덕준: 넌센스와 유머로 보여준 세계의 무의미》(광주시립미술관, 광주)를 열었다. 1972년 동경국제판화비엔날레 문부대신상, 1984년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우수상, 1983년 중화민국판화비엔날레 문부대신상, 1996년 제4회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했다. 곽덕준은 평면작업에서 출발하여 판화, 사진,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며, 이를 통해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넌센스와 유머를 작품에 담으려고 시도한다. 1960년대 그는 일본화를 배우고 염색 기술을 익혔던 경험을 통해 평면에 여러 가지 형태들을 복잡하게 구성해서 색면의 경계를 만들었다. 이 시기 회화작품은 개인적인 감정, 생활 신조, 내면의 아픔과 고통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서 작품 속의 형태는 복잡한 존재감을 무겁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1970년대 초반부터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와 같은 실험적 장르로 확장했다. 이 시기 대통령과 비평가의 얼굴에 작가의 얼굴을 합성한 작품은 절대적인 것의 부재와 서로 갈등하는 경계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계량기> 시리즈에서는 명확한 단위와 정보를 가지고 실측 가능한 존재와 행위에 대해 질문하고 그 허구성과 무의미함을 폭로하였다. 1970년대 이래로 ‘반복’은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무의미’라는 작품의 주제를 형상화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TIME』지에 실린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할 때에 이는 영향력이 가장 큰 잡지라는 이유로 선택되었다. 이처럼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세계와의 관계로 확장되고 있다. 1980년대 <무의미> 시리즈는 수십 개의 작은 사각형이 가득한 화면에 ‘무의미’한 인간과 기호를 가득 채웠다. 그는 세계의 무의미함과 사회 정보의 허상을 꼬집어 사람과 사람사이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풍화>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생애와 창작 세계를 회고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다.

 

 

알록달록 세상

참고로 딸의 알록달록 세상.  세상 첫 작품이다. 코팅해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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